리스본은 바람이 부는 도시입니다. 대서양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언덕을 타고 넘으며 골목의 세탁줄을 흔들고, 트램의 종소리를 더 멀리 보냅니다. 오늘의 루트는 리스본을 가장 ‘리스본답게’ 체험하는 방법—28번 트램으로 골목을 가르고, 벨렝 지구에서 역사와 디저트를 나란히 맛보는 하루입니다.
1) 28번 트램 – 노란차의 리듬
아침, 마르티몬치 정류장에서 28번을 타고 창가에 앉습니다. 급경사와 S자 커브를 돌 때마다 나무 차체가 살짝 뒤틀리는 감각, 골목의 카페를 스치며 들려오는 머그잔 소리—이 모든 것이 리스본의 박자입니다. 알파마의 하얀 벽, 바이샤의 너른 광장, 그라사의 전망대까지, 창밖 풍경이 한 장씩 넘겨지는 필름처럼 이어집니다.
혼잡을 피하려면 오전 9시 이전이 좋고, 소매치기를 대비해 가방은 몸 쪽으로 단단히 매세요.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니, 머플러 하나면 충분합니다.
2) 알파마 골목 – 손때 묻은 흰 벽과 파란 타일
트램에서 내려 알파마의 계단을 천천히 오릅니다. 창문마다 다른 화분, 파란 아줄레주 타일, 빨랫줄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. 세 대성당 근처로 가면 트램과 성당을 한 프레임에 넣을 수 있는 포인트가 여럿입니다. 카메라를 눈에서 떼고, 골목의 정적과 생활 소리를 먼저 들어 보세요. 여행의 속도는 대개 귀에서 결정됩니다.
3) 벨렝 지구 – 에그타르트의 원점
정오가 가까워지면 전철로 벨렝으로 향합니다. 향의 진동이 느껴질 즈음,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파란 간판이 보일 겁니다. 겉은 바삭, 속은 커스터드의 미세한 결이 살아 있는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면, 설탕과 시나몬 사이로 우유의 단맛이 천천히 올라옵니다. 갓 구워낸 온도를 기다린 보람이 있죠.
달콤함을 정리했으면,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늑골 천장을 올려다보세요. 석조 레이스처럼 촘촘한 매뉴엘 양식은 포르투갈의 항해 시대를 천장에 새겨둔 듯합니다. 강변으로 내려오면 벨렝탑이 기다립니다. 물 위에 반쯤 떠 있는 듯한 백색의 탑은, 바람과 파도에 오래 닿아 생긴 미세한 시간의 얼룩까지도 아름답습니다.
4) 일몰 전망 – 미라마르 or 포트 두 솔
다시 시내로 돌아와 포르투 두 솔 전망대에서 노을을 맞이하세요. 주황빛이 지붕을 쓸고 지나가며, 강과 도시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, 리스본이 낯설고도 익숙한 도시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. 음악이 들려온다면, 누군가 기타를 켠 것일 겁니다. 박수 몇 번이면 즉석 공연은 시작됩니다.
5) 동선·교통·예산
- 동선: 28번 트램(마르티몬치→알파마→바이샤) → 알파마 산책 → 전철로 벨렝 이동(타르트·수도원·탑) → 시내 복귀 후 전망대 일몰
- 교통: 비바 비아쥬 카드 충전(트램·전철·버스 공용). 24시간권 유용.
- 예산(1인): 트램·전철 7~10€, 타르트·커피 4~6€, 수도원 입장 10~12€, 저녁 15~25€ → 총합 40~55€
6) 촬영 팁
- 트램: 회전 교차로에서 패닝샷(1/20~1/30), 배경은 블러, 차량은 선명.
- 벨렝탑: 만조 전후 수면 반사 노리기, CPL 필터로 하늘 대비 강화.
- 전망대: 골든아워 15분 전 도착, 화이트밸런스 5200~5600K, -0.3EV.
마무리
리스본은 바람과 경사의 도시입니다. 하루를 트램의 리듬과 타르트의 단맛, 노을의 아치로 묶어 보면, 여행은 지도가 아니라 박자로 기억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. 언덕을 오르내린 만큼, 마음도 조금 넓어집니다.